오늘 회의에서 새로 온 여직원이 또 발표 중 보고서 숫자를 망쳤다. 상사는 앞에서 고함을 질렀고, 아래 앉아 있던 나까지 애꿎게 불똥을 맞았다. 지난 십수 년 동안 사흘에 한 번꼴로 마음속에서 ‘연탄 피우고 싶다, 목매고 싶다’를 외웠다. 그러다 보니 그 시절 열혈 청년이었던 나는 어느새 회사가 떼어 내지 못하는 고참 낡은 톱니바퀴가 되었다. 오늘도 그저 조용히 혈압약 한 알을 삼키고 여기 앉아 생명 징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.
퇴근하고 나니 건강검진 결과의 빨간 글씨를 본 뒤로 매일 삶은 음식만 먹으라고 닦달하는 아내가 집에서 기다린다는 생각에 이렇게 일찍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. 온몸이 지친 채 타이베이 중앙역 신콩 미쓰코시 근처로 비틀비틀 가서, 이 엿 같은 하루에 보복성 보상을 하듯 고칼로리 음식이나 대충 쑤셔 넣기로 했다.
학원가와 가까운 궁위안로 20항으로 들어섰다. 학생 때 이곳에서 밥을 먹은 건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. 중년이 되고 십수 년을 일한 뒤 다시 이곳에 돌아와 똑같은 거리를 보게 될 줄이야. 내 안의 밑바닥 월급쟁이 같은 궁상맞음과 무력감은 학생 때와 놀랍도록 똑같았다.
베이베이처 루러우판은 좁은 골목에 숨어 있다. 가게는 지독하게 작고 안에는 소박한 작은 탁자와 의자 몇 개뿐이다. 인터넷에서는 이 분위기를 ‘감성적’이니 ‘고상하다’느니 하지만, 그런 말을 보면 비웃음만 나온다. 요즘은 가게에 조금 더 밝은 노란 조명을 달고 조금만 깔끔하게 해 놓아도 감성 맛집으로 떠받든다. 여기는 그저 평범하고 정겨운 작은 식당이다. 일본 고독한 미식가의 마츠시게 유타카도 먹으러 왔다고 하는데, 실제로 식사하는 동안 옆에는 명성을 듣고 찾아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이 몇 명 있었다.
나는 세상 다 산 표정으로 계산대에서 주문과 결제를 했다. 루러우판 한 그릇을 시켰다. 이곳은 돼지 껍질이 중심인 기름진 스타일이다. 요즘 의사들은 내 지방간을 계속 경고하지만, 질척하지 않게 지은 밥 위의 번들번들한 다진 고기는 짭조름하면서 살짝 달아 정말 밥도둑이었다. 죄책감으로 가득한 기름을 크게 한입 삼키던 순간, 교복 입은 옆자리 학생이 밥 한 그릇에 간장 조림 달걀 하나를 느긋하게 추가하는 모습이 곁눈에 들어왔다.
그런데 나는 메뉴의 15위안짜리 간장 조림 달걀을 빤히 보고도, 아까 그 초라한 돈 몇 푼을 아끼겠다고 주문하지 않았다.
빌어먹을. 이 나이까지 살아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회사에서는 신입 뒤치다꺼리나 하면서, 퇴근 후 15위안짜리 간장 조림 달걀 하나를 먹을지도 망설인다. 대신 주문한 버섯 닭고기탕을 바라봤다. 국물이 맑고 달며 닭고기가 부드러운 건 맞지만, 이마의 땀을 훔치다 이제야 지금이 서른여섯 도에 가까운 여름임을 깨달았다. 뜨거운 국에 데여 땀범벅이 된 순간, 마음속의 그 서러움이 확 치밀었다. 진작 알았더라면 이 뜨거운 국에 쓸 돈으로 차가운 대만식 음료나 사 마실 걸.
밥 한 끼를 이렇게 처량하게 먹다니. 학생도 나보다 씀씀이가 크다. 거기까지 생각하니 차라리 이렇게 불러 터진 배를 안고 집에 가서 연탄이나 피우는 편이 낫겠다.
다행히 이 집 루러우판은 정말 내 입맛에 맞았다.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은 루러우판을 입에 퍼 넣자 기름 향이 확 피어올랐다. 설령 마지막 식사라 해도 적어도 배는 채우고 길을 떠나는 셈이다.

중년 월급쟁이의 혼잣말. 지난 십수 년 동안 사표 낼 배짱도, 인생에서 로그아웃할 용기도 없었다. 매일 입으로는 연탄을 피우고 싶다고 떠들면서 퇴근하면 또 조용히 달걀도 안 얹은 루러우판을 주문한다. 무더위에 멍청하게 뜨거운 국을 주문한 나를 욕하고, 그 15위안을 아까워하며, 간장 조림 달걀 하나도 아까워 못 시키고 온통 빨간 경고투성이인 이 몸을 끌고 내일도 출근 도장을 찍는다. 그게 진짜다.